안토니오 다마지오 – 의식의 이해를 향하여

TED(www.ted.com)에 올라온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강연입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대학에서  Brain and Creativity Institute 소장을 맏고 있으며, ‘데카르트의 오류’ 와 ‘스피노자의 뇌’의 저자입니다.

한국어 자막이  없어 제가 번역해서 올립니다. (번역한 후 TED 번역가로 등록하여 올리려고했으나, 이미 번역자가 지정되어 번역중에 있더군요. 한국 사람들 참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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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식 있는 마음의 놀라움과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모두가 아침에 일어날 때 의식 있는 마음이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아와 존재의 완전한 감각을 지닌 마음을 회복한다는 것을 경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이롭게 생각해야합니다. 사실 의식 있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인간애나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도 없겠지만 즐거움 또한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나 창조적 능력도 없겠지요. 물론 스콧 핏제럴드가 “의식을 발명한 자는 강하게 비난받아야한다.”라고 말했습니다만, 의식 없이는 그도 진정한 행복이나 초월의 가능성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잊은 듯합니다.

이제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이 것은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신비입니다. 고대의 철학과 신경과학 역사를 통틀어서도 이 것은 항상 논란이 되었고 해명하기 힘든 신비였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것을 해명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두어야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상황은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뇌 속의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이 질문에 다가가기 시작했고 해답의 윤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축하해야 할 또 하나의 놀라움은 지금 보고 있는 영상처럼 우리가 인간의 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미지 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한나 다마지오의 연구실에서 제작한 이 영상은 살아있는 뇌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뇌입니다. 죽은 사람의 뇌를 검시한 것이 아닙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에 볼 영상으로 뇌의 표면 아래 안쪽에 있는 살아있는 뇌의 연결 상태를 보여줍니다. 색으로 구분된 각각의 선은 세포의 몸을 시넵스로 연결해주는 섬유인 축삭 다발 입니다. 원래 축삭에 색은 없지만 신호 전달 방향을 표시하기 위해서 색을 부여했습니다.

어쨌든, 의식이란 무엇입니까? 의식있는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단순하게 이 것을 꿈꾸지 않는 깊은 잠 또는 마취될 때 잃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잠이나 마취에서 깰 때 다시 회복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꿈꾸지 않는 잠이나 마취 상태에서 잃는 것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우선 이것은 마음 즉, 정신적 이미지의 흐름입니다. 여기에서 이미지란 시각 청각 등 감각 패턴을 말합니다. 이 정신적 이미지의 흐름이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방에서 경험하고 있는 다른 어떤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각, 청각, 촉각 이미지의 수동적인 전시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지금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 당신 옆 사람이 아닌 우리들임을 인지합니다. 그래서 의식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자아를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의식 있는 마음은 그 안에 자아가 있는 마음입니다. 자아는 마음 안에 주관적인 관점 만듭니다. 또한 우리는 자아가 마음에 올 때만 온전히 의식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 신비를 풀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첫째, 어떻게 마음이 두뇌에서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과 둘째, 어떻게 자아가 구성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분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사실은 전혀 쉽지 않습니다만, 신경과학에서 점진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명백한 것은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경 지도를 구성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여기 제가 보여드리는 것처럼 격자를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그 격자 안에 신경세포와 그림을 상상해보세요. 이 것이 각각의 소자가 빛나거나 빛이 나지 않음에 따라 그림을 만드는 디지털 광고판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격자안의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디지털 소자를 켜고 끄는 패턴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지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보이는 것은 시각 지도 이지만, 소리 주파수와 연관된 청각이나 피부에 닿는 물체를 느끼는 촉각 지도와 같은 여러 가지 지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신경세포의 격자와 신경세포 활동의 지리적 배열인 우리의 정신적 경험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일깨우기 위해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합니다. 제가 왼쪽 눈을 가리면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것으로 여러분에게 모두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기 보이는 것과 같은 격자를 봅니다. 모든 것이 깨끗하게 직각을 이루고 있습니다.하지만 언젠가 제가 왼쪽 눈을 감으면 대신 이렇게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격자는 중앙 왼쪽 지역의 가장자리가 휘어져 보입니다.

매우 이상해서 한 동안 이것을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제 동료이자 망막 레이저 스케너를 개발한 안과의사 카만 플리아피토의 도움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왼쪽 구석의 작은 그림처럼 제 망막을 수평으로 스켄하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얻었습니다. 오른쪽 그림에서 제 망막은 완전한 대칭을 이룹니다. 시각 신경이 시작되는 중심와를 향해서 경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왼쪽 망막에는 붉은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에 요철이 있습니다. 작은 혹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것이 바로 제 시각 이미지 왜곡의 원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신경세포의 격자를 가지고 있고, 이 격자의 위치에 기계적인 변화를 주면 여러분의 정신적 경험에 왜곡을 가져옵니다. 이 것은 정신적 경험과 눈에 위치한 두되 즉, 시각 피질의 한 부분인 망막의 신경세포의 활동이 얼마나 유사한지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망막으로부터 시각 피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뇌는 망막에서 들어오는 신호에 많은 정보를 추가합니다. 다음 그림에서 뇌 속의 이미지 생성 지역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섬을 볼 수 있습니다. 녹색은 촉각 정보에 해당하고 파란색은 청각 정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이 모든 신경 지도를 그린 곳인 이미지 생성 지역은 여기 보시는 바와 같이 보라색의 바다에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여기기가 연합피질입니다. 그리고 대단히 멋진 일은 이 기억 즉, 연합영역으로부터 지각을 담당하는 바로 그 영역에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도록 편리하면서 게으른 방법입니까? 그리니까 두뇌의 일정 영역은 지각과 이미지 생성에 사용되면서 동시에 우리가 정보를 불러올 때 이미지 생성에 사용됩니다.

이제 우리가 이미지들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감을 가짐으로써 의식 있는 마음의 신비는 약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자아는 어떻습니까? 자아는 매우 규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리고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이것을 다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매일 매일 자아의 연속성을 유지해주는 기준점이나 안정성을 어떻게 얻을 수 있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각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몸 내부의 뇌 지도를 만들어서 다른 모든 지도에 대한 기준으로 사용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나 혹은 자아로 알고 있는 기준을 가지려면, 우리는 시간이 지나도 많이 바뀌지 않고 안정된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개나 세 개가 아니죠. 이것이 출발점입니다. 여기에는 몸이라고 하는 단일한 기준점이 있습니다. 물론 몸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의 크기나 성장률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몸 내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몸 내부의 환경과 관련된 것들, 예를 들면 우리 몸 안의 화학 작용의 관리 등은 사실 매일 매일 매우 잘 관되고 있는데, 이는 이들 변수들이 생명유지영역의 중심으로부터 너무 많이 벗어나는 경우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연속성 같은 것을 보장해주는 이미 내재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거의 무한한 동일성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그런 생리적 동일성이 없다면, 병이 나거나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러한 연속성의 한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뇌 안의 몸의 조절 기능과 몸 자체는 다른 것과 달리 매우 강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여러분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지만 청중인 여러분의 이미지와 나의 뇌는 생리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몸과 내 뇌 속의 몸 관리 부분은 밀접하고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결합이 있습니다.

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대뇌 피질과 척수 사이에 뇌간이 있습니다. 여기 강조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 몸의 생명 조절 기구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만약 뇌간 위쪽에 붉은색으로 칠한 부분을 충격 등으로 손상시키면 혼수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됩니다. 마음도 사라지고 의식도 없어집니다. 자아의 기반을 상실하는 것이며 자기 존재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대뇌 피질에서는 이미지가 계속 만들어지지만 그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뇌간의 붉은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의식을 잃습니다.

하지만 뇌간의 녹색 부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뇌간의 녹색 부분에 손상을 가하면 (손상은 종종 발생합니다) 몸은 완전히 마비되지만 의식 있는 마음은 유지됩니다. 느끼고 알고 완전한 의식 있는 마음을 가지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끔찍한 상태로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가진체로 자신의 몸에 감금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표현한 흔치않은 좋은 영화가 있습니다. 쥴리안 슈나벨의 몇 년 전 작품이 이런 상태에 있는 환자를 그렸습니다.

이제 그림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여러분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뇌간의 붉은 영역에는 간단히 말해서 여기 보이는 작은 사각형들이 있으며, 이것들은 우리 몸과 내부 상태의 여러 가지 뇌 지도를 만드는 모듈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정교하게 해부학적이며 순환 패턴을 가지고 서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뇌간과 몸의 단단한 결합을 가지고 우리는 몸의 지도를 만들 수 있으며, 이 지도는 원시적인 감정의 형태로 나타나 자아의 토대를 제공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내가 틀리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보는 그림은 무엇입니까? 대뇌 피질을 보세요. 뇌간과 몸 두요. 여기에 상호연결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 자아의 토대를 제공해주며 몸과 매우 강하게 연결된 뇌간이 있습니다. 대뇌 피질은 다량의 이미지로 우리 마음의 장관을 제공합니다. 이 이미지들은 사실 우리 마음의 내용이며 우리 마음에서 돌아가는 영화 필림으로 우리가 주의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살표를 보세요. 이들은 그냥 그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매우 밀접한 상호작용이 있기에 그린 것입니다. 대뇌 피질과 뇌간 사이에 상호작용이 없다면 우리는 의식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뇌간과 몸 사이에 상화작용이 없다면 우리는 의식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가진 뇌간은 여러 다른 종과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척추동물을 통틀어서 뇌간의 설계는 우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이 점이 내가 다른 종도 우리와 같은 의식 있는 마음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단지 그들의 것은 우리처럼 풍요롭지는 않은데, 우리와 같은 대뇌 피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른 점이죠. 나는 의식이 대뇌 피질의 위대한 산물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반대합니다. 우리 마음의 풍요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존재를 지칭할 수 있는 자아를 가졌다는 것을 지지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아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습니다. 원형적인 것과 핵심적인 것 그리고 자서전적인 것이 그것입니다. 앞의 두 개는 많은 다른 종과 공유하며 뇌간과 그 종의 피질로부터 나옵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 종만이 가진 것은 자서전적인 자아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래목의 동물들과 영장류들도 어느 정도 자서전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도 어느 정도의 자서전적인 자아가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점은 이것입니다.

자서전적인 자아는 과거의 기억과 우리가 만든 계획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살아온 과거와 기대하는 미래입니다. 그리고 자서전적인 자아는 확장된 기억, 추론, 상상, 창의, 언어를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문화의 도구인 종교, 정의, 직업, 예술, 과학과 기술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생명 작용에 설정되지 않은 새로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화에서 개발됩니다. 이것은 인간 집단에서 개발됩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사회-문화 규정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개발하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왜 이런 것을 신경 쓰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게 뇌간인지 대뇌 피질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무슨 상관이냐고 말입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호기심입니다. 영장류는 매우 호기심이 많습니다. 특히 인간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반중력이 지구로부터 은하를 끌어당긴다는 것에 우리가 관심을 가진다면, 인간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면 안되나요?

둘째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는 사회-문화 규정에서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학입니다. 우울증, 알츠하이머병, 약물 중독 등은 인간의 질병 중 심한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뇌졸중을 생각해보세요. 이 것은 당신의 마음을 파괴하고 의식을 빼앗아갑니다. 이것이 호기심을 넘어서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정당화하는 매우 좋은 이유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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